씨실과 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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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생각

어릴때,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기 전에는 외가집이나 할머니댁에 가면 언제나 쏟아질듯한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외가집과 할머니댁 모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시멘트 포장 조차 안되어 있을 정도로 외진 곳이어서 그런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이가 든 지금에서나 알게 된 사실이다. 그때는 그저 서울을 벗어나면 별로 수놓아진 밤하늘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주말마다 시골다운 시골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로 고마운 일이다. 나는 스무살이 넘어서까지 다들 어릴 때 한번쯤은 뒷산에서 산딸기를 따 먹고, 송아지랑 강아지와 지칠때까지 논두렁에서 뛰어 놀다가, 배가 고프면 밭에 남아있는 거둬가지 않은 무를 뽑아먹고, 밤에는 모깃불을 피워 놓고 별자리와 은하수를 헤아려본 적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외가에서나 할머니댁에서나 나는 어수룩한 도시 촌놈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골 풍경에 익숙해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놀라워하는 대학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나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특별하고 행복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놀던 다른 추억들은 가끔 살다가 만날 수 있어서 반가운데, 한 가지만은 철이 들고 난 후에는 재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은하수이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평상에 누워 모깃불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모기들을 연신 손을 휘저어가며 쫓으며 바라보던 수 많은 별들이 생생한데, 도시를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생활 반경 탓인지 은하수는 고사하고 별자리 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광공해(light pollution)에 시달리는 하늘 아래의 삶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천문대에 놀러가면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밤의 세계지도를 펴 놓고 제일 깜깜한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하는 걸까 이런 저런 고민은 많이 해 보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적어도 다소간의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던 몇 군데 -- LA 근교의 천문대, 호주 아들레이드 -- 에서도 기억 속의 밤하늘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무엇이 나를 기억속의 밤하늘을 갈망하도록 하는 걸까? 나는 은하수 아래에서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행복이 지금 와서 더욱 아름답고 크게 느껴지는 것 만큼이나, 내 추억속의 밤하늘은 실제 그러했던 것 보다 더 많은 별들로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그래서 더욱 더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것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을 다시 만나고 싶다. 다시 볼 수 있다면, 지금도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그런 순수한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별들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을테니까.

녹차를 찾아서 취미

내가 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욕이 왕성하던 그 시절에, 기숙사에 음식물 반입이 금지되어 있던 관계로 밤에 허기가 질 때면 녹차를 주전자 한 가득 끓여서 마시곤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음도락은 커피와 홍차를 아우르는 잡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하루 동안 시간대별로 마시는 차의 종류가 확립이 된 것 같다. 결국은 카페인의 함량의 역순으로 시간에 따라 배열된 셈인데, 아침에는 아침 식사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점심 후에는 홍차를, 저녁 후에는 녹차를 마시는 것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사 마시지는 않고 직접 끓여 먹는 터라, 얇은 주머니 사정에 큰 타격까지는 받지 않고도 누리고 있는 호사이다.

문제는 미국에서는 괜찮은 녹차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커피와 홍차야 워낙에 서양에서 즐겨 마시는 것이라 한국에서보다 좋은 원두와 홍차잎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마시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녹차를 구하려면 비싼 값을 치러야 하거나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적당히 "green tea"라는 이름만을 달고 있는 녀석을 동네 수퍼마켓이나 스타벅스같은 곳에서 입양하면 이것이 홍차인지 녹차인지 알기 어려운 맛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요즘 한동안 일본 식료품점과 커피빈, 그리고 peet's를 들락날락하면서 생체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소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게된 것 같다.

일단 일본에서 들여와 파는 녹차들 중 미국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genmai cha와 sencha이다. 이중 genmai cha(玄米茶, 현미차)라는 것은 결국 현미녹차를 말하는 것이고, sencha(煎茶, 전차)가 우리가 생각하는 녹차에 가깝다. 문제는 sencha의 경우는 매우 작은 녹차잎 조각 -- 혹은 가루 -- 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녹차나무 종자가 달라서 그런 것인지, 덖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맑은 맛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위 사진은 Peet's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genmai cha의 사진이다. 현미 알갱이와 비교해보면 녹차잎의 크기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위 사진은 역시 Peet's 홈페이지서 가져온 sencha의 사진이다. 잎조각의 크기나 차의 탁한 정도를 genmai cha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예전에는 한국 수퍼마켓에 가면 설록차에서 나오는, 피라미드 티백에 담긴 질 좋은 잎녹차를 구할 수 있었다. 이런 녹차가 좋은 이유는, 피라미드 티백은 종이 티백과 다르게 큰 구멍이 많이 있어서 차가 더욱 잘 우려져 나오고, 또한 녹차 잎이 부서져있지 않아서 맑고 은은한 향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녹차가 한국 수퍼마켓에서 보이지 않게 되어서, 한국산 티백 녹차, 일본산 티백 녹차, 일본산 sencha등을 전전해보았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 비축해놓은 설록차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늘 희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동안 티백이 아닌 주전자에 우려먹는 잎녹차로는 누나가 중국여행을 다녀와서 사다준 용정차(龍井茶)를 마시고 있었는데, 맑고 은은하면서도 다소 강한 풀잎향이 약간 느껴져서 썩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부로 가지고 있던 한 통을 다 마시게 되어서, 잎녹차를 어디서 구하나 고민하면서 여기 저기를 찾아보던 중, 미국에서도 용정차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Lung Ching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어서 그것이 용정차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Peet's 홈페이지에서 Lung Ching 이 dragonwell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위의 사진이 용정차, 혹은 이곳 이름으로 Lung Ching (dragonwell)이라고 불리는 녹차이다. Sencha의 사진과 비교하면 잎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원하던 설록차를 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마음에 들던 녹차를 쉽게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 아직 Lung Ching green tea를 구입해보지는 않아서 과연 얼마나 용정차와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써 놓고 보니 'Kimchi가 김치랑 얼마나 비슷한 맛이 날지'라고 써 놓은 셈이 되었는데, 사실은 그게 정확히 내가 나타내고자 하던 바이다. 똑같은 음식이 국경을 건너가면 바뀌게 되는 것이 이름 뿐만이 아니니까!)

한가지 재미난 사실은, 순전히 내 경험에 의한 것이라 얼마나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용정차의 잎의 크기가 제일 크고 잎이 덜 말려있으며, 일본 sencha는 가루가 많고 잎의 크기는 작은 편이고, 우리나라의 작설차는 잎이 돌돌 말려있고 (그래서 참새의 혀라고 불리운다는 것 같다) 잎의 크기는 그 중간정도라는 것이다. 한중일 삼국의 문화적 특징이 살짝 엿보이는 부분이랄까.


겨울방학 소식

이번 겨울방학엔 요양을 테마로 잡고 보내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여러가지 일에 심신이 시달렸던터라 잠시 쉬어가자는 생각. 그런데 얼마 전에 무거운 걸 나르다가 그랬는지 허리가 아파서 지금은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문자 그대로 요양중이다.

지난 주엔 요양 계획의 일환으로, 오랜만에 맑은 공기도 마시고 눈 구경도 하자는 생각에 LA에서 동쪽으로 두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겨울 휴양지인 Big Bear Lake에 다녀왔다. 해발 8000ft에 위치한,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휴양지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역이다. 올라가는 길에는 pacemaker 역할을 해 준 local driver들 덕택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재미나게 오르면서 메마른 캘리포니아의 경치가 눈덮인 침엽수림의 경치로 서서히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침 머무르는 3박 4일의 가운데 이틀 동안 눈이 30cm가량 내려서 눈 구경은 실컷 하고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던 탓에 실외에서 맑은 공기를 만끽하기는 어려웠다. 오랜만에 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백만년만에 체인도 채우고 하는 바람에 고생도 꽤나 하다 온 것 같다. 휴양차 갔던 것인데 그닥 성공적이라고만은 하기 어려웠던 휴가였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점은, 이곳에 스키장이 두 곳이나 있는데 장비가 마련되지 못했던 관계로 스노우보드를 탈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서 보드 없이 지내는 세 번째 겨울이 되어버렸다. 다음 겨울이 오기 전에는 꼭 장비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위 사진의 위쪽에 보이는 것이 슬로프로 추정되는 설면이다. 저 곳에서 보딩을 즐기면 눈앞에 펼쳐지는 겨울 호수가 절경일 듯 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맞은 크리스마스는 일전에 놀러가서 하룻밤 신세를 졌던 민석이와 무석이를 초대해서 함께 보냈다. 준비한 것이 없어서 더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오랜만에 즐겁고 시끌벅적한 저녁이었다.

The Art of Racing in the Rain 감상문

얼마 전 아마존에서 주문을 하다가 무료배송 금액에 다소 모자라서 추가로 주문했던 책이었다. 휴가철을 맞이하여 가볍게 읽어볼 요량으로 선택했던 책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멍멍이의 시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참신함에 더해 멍멍이의 주인장이 레이서인 관계로 레이싱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 더욱 재미를 더해주었다. 중간부터는 다소 진부한 멜로드라마가 펼쳐져서 조금 짜증나고 아쉽긴 했지만, 쉽게 쉽게 읽히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즐거운 소설이었다.

덕분에 아직도 Obama의 자서전은 절반이나 남아있다. 과연 개강 전까지 다 볼 수 있을런지. 문득 생각이 나서 그동안 사 놓고 몇 장만 들춰보았던 책들을 꺼내보았더니 무려 다음과 같았다.

  •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 The Language Instinct by Steven Pinker
  • History Begins at Sumer by Samuel Noah Kramer

사놓고 모셔만 두고 있는 책들도 많지만 일단 시작했던 책들부터 마쳐야 하므로 제외. 영어가 모국어라면 더 많은 책들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의 글쓰기 스타일 생각

블로그에 끄적거릴때마다 느끼는 점은, 내가 쓴 글은 호흡이 지나치게 긴 감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읽기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글이 많은데, 내가 글을 쓰면 그 반대로 읽어내려가는데 걸리적거림이 많으면서도 정작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은 두드러지지 않거나 적절하게 구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블로그에 올리려고 적어내려가고 있는 글이 있는데, 길이는 엄청 길어졌음에도 막상 본문에는 돌입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이대로 본문으로 들어가기에는 무언가 이전까지의 글과 어울리게 배치되지 않는 것 같아서 글쓰기에 진전이 없는 글이 계속 잠들어있다.

처음에 이 블로그를 열었을때는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놓는 곳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더래서, 짧은 신변잡기성의 글을 올리려다가 주저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카탈리나에서 나와 살면서 내 블로그를 나의 소식통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우왕좌왕 중. 태그로 글의 성격에 따라 구분을 해야 하려나.

요즘들어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 그 방법이 말이 되었던 글이 되었던 -- 재주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든다. 말하기는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다소 의문. 글쓰기는 여기서 연습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결국은 내 생각 자체가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일 수도 있으니, 글쓰기 연습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해나가다 보면 말하기도 조금은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생각을 가다듬어서 읽는 사람에게 친절한 글을 써 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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